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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⑮

[ 2021-12-07 10:15:41]   

 

정정숙 박사


(29)
안나 채핀 (Anna Bair Chaffin), 한국 최초의 감리교 여성 목사

 

부인성경학교 교사로 여성사역자 양성

협성여자신학교 설립하여 헌신해


선교사들의 많은 사역 가운데 목회자 양성은 매우 중요한 임무입니다
. 한국에서 여성 교역자 양성에 헌신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이며 협성여자신학교 교장으로 봉사한 이가 있습니다.


안나
B. 채핀(Anna Bair Chaffin, 한국명 채부인<蔡富仁>)이 바로 이분입니다. 그는 1883926일 미국 아이오아 주 메닝에서 출생하였고, 1901년 라도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1906
년 아이오아 주립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고 워싱턴 존 플래처 대학 피아노과를 1911년에 졸업하고, 빅터 채핀(Victor D. Chaffin, 한국명 채피득<蔡彼得>)과 그 해 6월에 결혼 한 후 딸 모텔을 낳았습니다.


남편 빅터 채핀은
1881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안나와 결혼한 후 1913423일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부인과 딸 그리고 처제 로사 베어(Rosa Bair, 한국명 배의례<裵義禮>)와 함께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여
1914년에 감리교 선교사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교적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경기도의 고양, 김포 지역 교회를 언더우드가 선교사와 동사목사로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191665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 안나 채핀은 남편과 사별하고 감리교 부인성경학원 교사가 되었다가
1918년 앨벗슨(Albertson)의 후임으로 원장이 되었습니다. 1차 안식년 때에는 뉴욕 성서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1919-1920).


1920
년 한국에 돌아와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 초대 교장이 되어서 여성 사역자 양성에 헌신하였습니다. 2차 안식년 때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종교교육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사역에서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1931년 선교잡지 <우리 집>의 편집인으로, <절제, The Temperance News> 발행인으로 문서선교를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1931614일에는 양주삼 총리사의 집례로 개성에 한국 최초의 감리교 여성 목사가 되었습니다.


협성여자신학교와 협성신학교가 통합되자 부교장으로 여성 사역자 양성에 헌신했고
, 만주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이 되었습니다.


1938
319일 친동생 로사 베어 목사가 뇌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가 하던 충청지역 여성선교회와 사회복지사업을 관장하다가 1940년 일제에 의해서 강제 출국을 당했습니다.


1946
년 크리스마스 무렵 다시 한국으로 와서 여선교회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한국선교 35주년 기념 및 회갑연'에서 '내 평생 사업이 여성 교역자 양성에 있으므로 일생을 바쳐서 일한 은퇴 여전도사 안식관 설립이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소원이 이루어져 1948105<채 부인 기념 여전도인 안식관>이 건립되었습니다.


그는
1952년 은퇴 후 감리교 해외구제위원회 사업국장을 맡았고, 1954-1958년에는 이화유지재단 이사장으로 봉사하였습니다.


한 평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복음 선교와 여성 교역자 양성에 헌신하다가
1962년 미국으로 돌아가 1977년에 하나님의 나라에 옮기웠습니다.


그의 유해는 양화진 남편 곁에 안장되었고 그 곁에는 동생 로사 베어가 안장되어 있습니다
. 한국을 위해 한평생을 그것도 여성 사역자 양성을 위해서 자신을 바친 분입니다.

 

(30) 캐롤 미첼 (Carol A. Mitchell), 성결교의 어머니 같은 음악 선교사

 

음악 선교사로 서울신대에서 사역

많은 제자 키운 아름다운 삶 살다

 

초대 선교사들만이 귀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선교사들도 아름다운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중 한 분이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음악교수로 헌신한 캐롤 미첼(Carol A. Mitchell, 한국명 민지은) 선교사입니다.


민지은은
1940115일 미국 인디애나 주 시골 마을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끝없는 옥수수 밭이 이어지는 목가적 풍경 속에서 농부의 딸로 자랐습니다.


민지은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절대음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음악 레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민지은은
13세 때인 19531020, 60여 명이 참석한 작은 교회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고등학생 때에는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켄터키 주 윌모어 시에 있는 애즈버리 대학
(Asbury College)에 입학하여 음악을 전공했고,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음악교육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선교사로 헌신할 길을 찾으며 음악과 생활을 하였습니다
. 이 기간에 인디애나 주 버틀러 대학교(Butler University) 음악대학원에서 공부하여 19678월에 음악교육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오빠의 지인으로부터 한국의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음악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하여
19688월에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는 선교사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서울외국인학교 교사생활을 하면서 아현동 옛 서울신학대학교 자리에 살았다고 합니다
. 2년 계약으로 한국에 왔으나 1년 더 연장하여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에서 동양선교회
(OMS) 선교사 훈련을 받고 1972년 가을에 한국에 다시 와서 1973년부터 서울신학대학교 음악교수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는 원래 다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사람의 모금이 늦어져 민지은이 이 일을 맡게 되었고, 그 후 34년에 서울신학대학교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는 서울 아현동에 있었고 교회음악과도 없었지만 민지은은 채플 시간에 반주도 하고 합창을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 그는 안식년마다 미국 여러 신학교와 기독교대학에서 교회음악의 이론과 실기, 선교학, 영성학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1979
년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앙상블 중창단'을 조직하고 지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12명의 단원과 반주자로 구성되었는데 그 반주자가 지금 교회음악과 오르간 교수인 전용숙입니다.


앙상블중창단은 서울신대의 대표적 중창단으로 여러 교회와 집회에서 찬양을 하였습니다
. 2005년 사역 말미에는 건강 문제로 휠체어에 앉아서 지휘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민지은은
34년 서울시내 사역을 끝내고 2005년에 은퇴하고, 서울 수정교회에서 음악사역을 하다 2008년 미국으로 귀국했습니다.


미국에서 건강검진을 하다가 백혈병이 발견되어 투병생활을 하다가
20152월에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웠습니다. 그는 한국의 신학자와 교회음악도들에게 어머니 같은 교수요 음악선교사였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을 물질로 도왔습니다
. 자신은 검소하게 살면서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많은 성결교인들은 캐롤 미첼 아니 민지은을 귀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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