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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⑭

[ 2021-11-03 10:14:39]   

 

정정숙 박사

 

(27) 마리 위도슨 (Mary Ann Widdowson), 구세군 가정단 총재

 

영국 출신으로 남아공에서 한국에 와

한국전쟁 와중에 다시 한국에 와서 헌신


구세군은 원래 영국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
(William booth)와 그 부인 캐드린(Catherine)이 만든 전도, 자선,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단체입니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세상을 구하기 위한 군사 체제화 된 단체입니다.


한국에 최초의 구세군 개척대
(이들은 선교사를 이렇게 부릅니다) 파송은 1907년 구세군 창설자 부스대장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그 집회에 참석한 한국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908년 호가드(Robert Hoggard, 한국명 허가두<許嘉斗>) 정령이 한국원정 사령관으로 임명되고 6명의 개척대가 1908101일 제1진 구세군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은 서울 서대문구 평동에 구세군의 본영을 설치하였으며, 19081012일에 첫 집회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구세군이라고 하면 크리스마스 자선냄비가 생각날 정도로 구제사업에 열심이었습니다. 많은 사관(구세군의 성직자를 이렇게 부릅니다)들이 수고하였지만 우리는 마리 위도슨(Mary Ann Widdowson)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리 위도슨은
189844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하여 부모를 따라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타운(Cape Town)으로 이주했습니다. 1925년 요하네스버그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남아프리카 영문 담임사관이 되었습니다.

 

1926년 크리스 위도슨(Chris Widdowson)을 만나서 약혼하고 1927년 결혼하기 위해서 크리스 위도슨이 사역하고 있는 한국을 찾아서 먼 여행을 했습니다. 1927년 가을에 부산을 경유하여 서울에 도착하여 결혼을 하고 남편을 도와서 고아원을 운영하였습니다.

 

남편 크리스 위도슨은 192611월에 내한하여 구세군 사령부의 정위로 봉직하다가 19342월에 한국을 떠나서 아프리카 케냐에서 총무서기관으로 일하다가 다시 구세군 한국사령관에 임명되어서 한국에 왔습니다.

 

마리 위도슨은 고아원을 운영하며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은 고아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고아들의 위생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 크리스가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로 앓아 눕고 이어서 마리도 발진티푸스로 눕게 되었습니다. 고열로 며칠 동안 의식을 잃기도 했습니다. 마리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고아들의 먹을 것을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1934년 아프리카 케냐에 총무서기관으로 발령을 받고 갔다가 한국전쟁의 참화가 극심한 1953119일 한국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때 남편은 구세군 한국 사령관이었고 부인 마리는 고아원 원장 겸 가정단 총재라는 직함이 주어졌습니다.


이들은 고국에서 편히 지낼 수도 있었는데 이것을 거절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 있는 한국을 위해 이 땅에 다시 돌아와서 헌신했습니다
.

 

마리 위도슨은 위암에 걸려서 고통을 겪으면서도 크리스마스 자선냄비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거리에서 노방전도도 하였습니다.


마리는 한국에서 헌신하기를 원하여 귀국을 거절하고
󰡒한국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하면서 한국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마리는
19565 10일 서울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겼습니다. 장례식 때는 60여대의 조문자동차 행렬이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 김태선 서울시장이 조문을 했습니다.


남편 크리스 위도슨은
195781일 사령관직을 사임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는 부인의 묘 앞에 단풍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지금은 이 나무가 크게 자라서 양화진 방문객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28) 마그다 코흘러 (Magda Koehler), 스웨덴 최초의 구세군 여성 선교사

 

짧은 기간에 사랑의 사역 감당

그를 존경하여 자녀의 이름을 짓기도

 

북 유럽 스웨덴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서 12명의 선교사들을 한국에 파송하였습니다. 1진은 코흘러(Magda Koehler), 프릭(Sofia Frick), 올손(Verna Olson's)입니다.


이들은
19111224일에 한국에 도착한 여성독신 선교사들입니다. 한국에 처음 온 스웨덴 선교사들을 환영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통역을 맡은 이건영이 '남편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독신''과부'라고 잘못 통역하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마그다 코흘러는 1887610일 스웨덴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11년 스웨덴 구세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파송 제1진 선교사로 임명되어 한국에 왔습니다. 그는 한국 구세군 제1대 사령관 호가드(Hoggard)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전도 열정이 대단하여 한국어를 배운 뒤 시골로 다니며 순회 전도를 하였고
, 경북 의성 원당 지방의 담임사관을 지원하여 농촌지역에서 봉사했습니다.

 

코흘러는 호가드 사령관 부인과 함께 노매실, 원당, 소일 등의 경북 지방을 순회하였는데 5-6백리를 걸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도 교통이 불편한데 1912년의 상황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서양 여성이 머나 먼 길을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코흘러는 경북 의성 원당 지역에 장티푸스가 유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그 지역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지역 주민 중에는 코흘러 선교사를 존경하여 그의 한국 이름인 고월라
(高月羅)를 따서 자녀의 이름을 지을 정도였습니다. 그 대표적 예로 김사국 부령이 스웨덴 사관 코흘러를 존경하여 장녀의 이름을 󰡐월라󰡑라고 지었습니다. '김월라'가 구세군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장형일 사관의 부인입니다. 이것은 코흘러의 헌신과 섬김이 얼마나 큰 감동을 주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코흘러는 1913년 경북 의성에서 장티푸스 환자를 돕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의성에서 대구까지 150리 길을 들것에 실려 대구 동산병원으로 옮겨져서 입원하였습니다.


그는 대구 동산병원의 의료진과 서울서 내려간 간호사들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1913523일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나이 만26세를 10여일 앞둔 꽃같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플로렌스 릴리(Florence Riley)19137<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Memorial Tribute to Captain Magda Koehler' 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여 코흘러가 한국에서 헌신한 전도 행적을 소상히 소개했습니다.


코흘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는 것과 예수의 십자가를 나누기 원하여 기꺼이 고난을 당하기 원한다'(The Korea Mission Field, 19137, p. 189).


그가 순직한 뒤 일 계급 특진하여 정위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젊은 나이, 한국에서의 짧은 사역 그리고 구세군이라는 특수성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의 유해가 대구 동산병원 구내에 묻혀 있는 것이 늦게야 확인되어 2000927일 구세군 선교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양화진에 이장되었습니다.

 

코흘러의 사진을 구하지 못하다가 스웨덴에 사는 한 교포가 보내 준 제1진 선교사 3명의 빛바랜 사진이 유일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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