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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⑩

[ 2021-07-06 10:05:21]   

 
정정숙 박사

 

(19) 부마태(Martha Scott Bruen),  대구 신명학교를 세우다

 

선교사 주택에서 신명여학교 세우고

대구지방의 기독교 교육기관으로 발돋움


기독교가 대구와 경북 지방에 전래된 것은 베어드
(William B. Baird, 배위랑) 선교사의 대구 방문 때부터입니다. 베어드는 부산에서 사역하다가 1893417일부터 520일까지 1,240리를 불편한 교통 사정을 이기며 경북 지방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베어드는
1893422일에 서경조 조사와 함께 조랑말을 타고 마부 박재룡 소년을 대동하고 밀양과 청도를 지나 팔조령을 넘어서 거창을 경유하여 대구에 들어갔습니다. 이 날이 대구에 기독교 선교사가 처음 입성한 날입니다.


베어드 일행은 대구에서
3일을 머물고 25일 동명을 지나서 상주, 안동, 의성, 신령, 영천, 경주, 울산을 경유하여 동래로 돌아갔습니다.


대구에서 공개적인 전도강연은 할 수 없었고 많은 전도 서적을 배포했습니다
. 베어드는 1894년에 다시 대구를 방문했습니다.


베어드는
189512월에 대구에 와서 선교 기지를 물색했습니다. 18961월에 남문 안의 정완식 씨의 대지 420평 초가 520여 간과 기와집 16간을 구입하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대구 약전골목에 있는 제일교회 부지입니다.


베어드는
19864월에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이사왔으나 선교부의 교육사역의 전략 때문에 다시 서울로 부름을 받고 10월에 서울로 임지를 옮기게 됩니다. 그 때 대구 선교는 처남 되는 아담스(James E. Adams, 한국명 안의와) 선교사에게 맡겨졌습니다.


두 번째 선교사인 존슨 의사
(W. O. Johnson, 한국명 장인차)에 이어 세 번째 선교사인 부루엔(Henry Munro Bruen, 한국명 부해리, 1874-1957) 선교사가 대구에 부임했습니다. 부루엔은 18999월부터 1941년까지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 지방에서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부루엔은 경북 서북부 지방을 맡아서 교회 개척 사역을 하였는데 김천지역에
11교회, 구미 지역에 6교회, 성주 지역에 2 교회를 개척하는 등 선교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부루엔과 그의 부인 부마태
(Martha Scott Bruen)의 교육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최초로 1900111일에 대구제일교회 구내에서 소학교 남자부 대남학교, 여자부 신명여자소학교가 개교되었습니다. 1914510일에 대남학교는 희원학교로, 여학교는 순도학교로 개명되었다가 192641일에 두 학교는 희도보통학교로 통폐합되었습니다.

 

190651일에 27명의 학생으로 대구 선교지부 구내의 초가집에서 4년 과정의 개성중학교(Boy󰡑s Academy)가 개교되고, 부마태 선교사가 19071015일에 선교부 구내의 여자 손님 접대용 주택에서 신명여학교(Girl󰡑s Academy)를 개교했습니다.


이 때 건물은 시골에서 옮겨다 놓은 다섯 칸짜리 일자형 한옥이었습니다
. 두 칸은 이미 있던 신명여자소학교가 사용하였고, 한 칸은 신명여자중학교가 사용했습니다.


부마태는 신명여자중학교를 설립하였으나 선교부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지 못하고 부마태 개인이 운영하는 형태였습니다
. 그러다가 1911422일에 당국으로부터 사립 신명학교 설치인가를 받았고, 1912년에 미국 선교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 해에 위민스쥬빌리기금
(Women󰡑s Jubilee Fund)에서 2,000원을 보조받아서 교사를 신축하여 1913년에 완공하였습니다. 이렇게 신명여학교는 부마태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학교였습니다.


부마태는
19301020일 하나님의 부르심은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20) 헤이든 기포드(Mary Hayden Gifford),  최초의 공인찬송가 발간하다

 

부부가 교육선교하고, 찬송가 발간

젊은 나이에 이질로 부부 함께 별세

 

그리스도의 신앙생활에서 성경과 찬송가는 기본적인 필수품입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하나의 찬송가를 사용하지만 얼마 전까지 만해도 여러 개의 찬송가가 나와서 혼란을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인된 찬송가를 발간한 여선교사가 있습니다
. 헤이든 기포드(Mary Hayden Gifford, 한국명 기보부인<奇普夫人>)입니다. 그는 1857823일 미국에서 태어나 파크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888
929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정신여학당 당장과 여성 선교사역을 경기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사역했습니다.


1890
년에 그는 다니엘 L. 기포드(Daniel Lyman Gifford, 한국명 기보(奇普))와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1892년부터 선교 편지 <The Repository>에 많은 글을 기고하고, 1892년 한국 최초의 왕립학교 육영공원에서 교사로 일하고 '조선셩교서회'(기독교서회의 전신) 창립위원으로 일했습니다.


다니엘 기포드는
1898년에 뉴욕에서 <조선의 매일 생활>(Every Day Life in Korea)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한국의 풍속을 세계에 알리고 후임 선교사들에게 귀한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남편은 경신학교장
, 부인은 정신여학당을 맡아서 교육선교를 하였습니다. 이들 젊은 선교사 부부는 1900410일 경기지방 선교여행 중에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부부가 양화진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헤이든 기포드는 짧은 생애이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 헤이든은 1895년에 54곡으로 된 찬송가집을 처음으로 발행하였고, 1898년에는 여기에 더하여 83곡의 찬송가를, 1900년에는 87곡의 찬송가 제3판을 그레함 리(Graham Lee)와 함께 출판했습니다.


장로교에서는 이 찬송가를 최초의 공인 찬송가로 채택하고 모든 장로교회에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 한국에서의 찬송가 발행에 헤이든 기포드의 공로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이들이 편집한
<찬셩시>(1895)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 무대였던 서북지방에서 오래 사용된 장로교 전용의 찬송가였습니다.


여기에
87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영국 곡이 33, 미국 곡 22, 한국 곡과 독일 곡과 일본 곡이 각각 1, 순수 창작 2, 미상이 22곡이었습니다.


<찬셩시>에는 낯선 한문 투의 글이 서북 지방의 사투리로 표현된 것이 많지만 토착 찬송가의 출현을 기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언더우드
(H.G. Underwood, 1859-1916)1894년에 처음 간행한 <찬양가>와 이(Lee)와 기포드의 <찬셩시>의 묘한 차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서울과 서북지방, 지도자로서의 언더우드와 사무엘 마펫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헤이든 기포드의 이런 노력이 한국 찬송가 역사에 길이 보존되어야 할 엄청난 사역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젊은 선교사 부부가 경신학교와 정신학교를 이끌면서 교회사역을 열심히 했습니다
. 1895년에는 양화진 한강변에서 피서를 하다가 언더우드와 함께 지금의 서교동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2002
410일 서교동교회는 기념비를 세우면서 '풍요로운 고국을 버리고 미국 북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내한하여 11년간 활동하였다. 기포드 부부의 숭고한 선교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감사하며 제102주기를 맞아 기념사업으로 이 비를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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